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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성경의 주요주제

레마 강조 담론에 대한 신중한 접근

by info-box-blog1 2025. 4. 13.

레마 강조 담론에 대한 신중한 접근

최근 한국 교회 내에서는 ‘레마’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성경 말씀을 읽는 가운데 마음에 깊이 와닿고 깨달아지는 구절이나 메시지를 ‘레마’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일부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경험하려면 레마를 받아야 한다’는 식으로 강조하기도 한다.

이 주장에 따르면, 감동을 주고 삶을 변화시키는 말씀은 레마이며, 그렇지 않으면 단순한 정보 수준의 기록된 말씀에 불과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몇 가지 점에서 신학적으로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첫 번째는 원어적 정의의 문제다. 헬라어에서 ‘레마’는 기본적으로 ‘말’, ‘발화된 것’, 또는 ‘선포된 구절’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며, 성경 내에서는 ‘로고스’와 큰 의미 차이 없이 병렬적으로 쓰이곤 한다. 로고스는 ‘말씀’, ‘진리’,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폭넓은 용어로 사용되고, 레마는 특정한 문장이나 사건에 대한 표현일 수 있지만, 영적인 가치 면에서 우위를 가진 단어로 해석되기는 어렵다. 실제로 교회사 전반에서도 레마에 독립된 신학적 지위를 부여한 전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신학적 수용의 오류다. 레마 중심 해석은 무의식적으로 칼 바르트의 사상과 닮아 있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에게 ‘사건으로 다가올 때’ 비로소 말씀으로 성립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사상은 보수적 신학 내에서 종종 자유주의적 관점으로 분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유사한 내용을 따르면서 정작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일종의 신학적 모순일 수 있다.

 

세 번째는 성경 권위의 훼손 가능성이다. 말씀을 ‘레마로 깨달아야만 효력이 있다’는 주장 자체가, 말씀의 객관적 권위를 주관적 체험에 종속시키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성경은 독자의 인식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다. 감동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그 말씀이 효력이 없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오히려 성경을 사람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말씀의 효력은 인간의 감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성경 말씀이 마음에 깊이 와닿고 깨달아지는 순간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레마라는 새로운 형태의 말씀이 내게 임한 것이 아니라, 기록된 말씀(로고스)이 성령의 조명으로 내게 실제적이고 살아 있게 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성령은 말씀을 조명하시는 분이며, 우리가 말씀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이다.

 

정리하자면, 레마와 로고스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레마는 능력 있는 말씀’, ‘로고스는 일반적인 기록된 말씀’이라는 주장은 신학적으로도 언어학적으로도 근거가 약하다. 말씀을 통해 감동을 받고 삶이 변화되는 것은 단어 자체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씀은 언제나 로고스이며, 깨달아지는 순간도 로고스가 성령을 통해 역사하는 시간이다.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레마를 받아야 한다’는 긴장감보다, 성경 말씀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뢰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 말씀에 귀 기울이는 태도이다.